한옥에서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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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하리라

봄 - 따사로운 봄볕 아래 만개한 매화가 아름답습니다. 홍매화, 백매화가 뭉게구름처럼 피어난 돌담길을 걷노라니 지난 입춘에 할아버지께서 대문에 입춘첩을 써 붙이시며 해주신 덕담이 떠오르는군요.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봄이 시작되니 크게 길하고 경사스러운 일이 많이 생기기를 기원한다는 말입니다. 새봄을 맞는 마음은 글귀에 담겨 대문, 기둥, 대들보, 천장을 장식합니다. 발돋움하면 안이 훤히 들여다 뵈는 정다운 담장. 잠시 발길을 멈추고 그 안을 들여다보니 사랑채, 행랑채, 안채 등 독립된 듯 서로 어울리는 한옥의 조화미가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외부세계와 공간을 나누면서도 완전히 단절시키지 않고 조화를 이루는 담, 그 안팎으로 봄이 한창입니다.봄

LANDSCAPE 01.조화

한옥은 조화미가 빼어난 집이다. 자연과의 일체감을 중시하고 유교의 가르침에 따라 공동체를 소중히 여기는 한국인의 삶이 한옥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한옥은 바람과 물, 산의 흐름과 형세에 어우러지는 터에 지어진다. 위계를 구분하는 유교의 영향으로 공간이 나뉘는데 부부의 공간까지 구분되는 것이 특이하다.
안살림을 총괄하는 아내는 안채를, 손님을 응대하고 학문에 힘쓰는 남편은 사랑채를 담당한다. 남녀의 구별이 뚜렷했던 유교의 영향으로 두 공간은 적절한 차단형식이 가해진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모든 공간은 한데 어울리며 연결되어 있다. 안채는 옆방과 등을 맞대고 건넌방과 창을 맞추는 것이다. 한옥에서는 위계와 규범의 유교적
가치보다 조화의 가치를 우선했다.

열린 집에서 잠시 바람을 품노라

여름 - 한 여름의 열기를 피해 대청마루에 앉습니다. 긴 서까래가 만든 그늘 아래서 흐르는 땀을 식히고 상쾌한 바람을 맞습니다. 바람은 막힘이 없습니다. 앞뒤좌우에서 연신 불어오는 바람이 한결 시원 합니다. 여름날 한옥은 사방이 트인 공간을 연출합니다. 방문을 닫으면 독립된 공간이 되지만 방문을 열면 모든 공간이 서로 소통하며 열린 하나의 공간이 됩니다. 마당을 향해 시원하게 열린 대청마루는 각각의 방을 연결하는 매개공간입니다. 한겨울에는 대청마루의 분합문을 내려서 걸어 잠궈 북풍한설을 막고, 여름에는 그 분합문을 열고 또 전체를 올려 들쇠에 걸어 놓아 바람이 통하게 합니다. 문을 다 열면 벽이 허물어진 것과 같아지니 열기가 머물 곳이 없습니다.

여름

LANDSCAPE 02.열림

한옥은 열린 공간이다. 소통하며 순환하는 자연의 원리가 그 안에서 숨쉬고 있다. 한옥에서는 4개의 기둥이 만든 공간을 기본단위로 하는데 이것이 바로 ‘칸(間)’이다. 이 칸이 더해지거나 분화함으로써 공간에 다양한 변화를 만드는데 거기에는 나름의 질서가 있다. 공간은 맞대고 있거나 대청마루, 툇마루 등으로 연결되어 있다.
문을 닫으면 독립된 공간을 만들지만 문을 열면 공간은 한 순간 하나로 이어져
소통한다. 기본적으로 공간은 물 흐르듯 소통하고 있다. 이쪽 방문을 열고 나가면 대청마루가 있고 연이어 반대편 방이 있는 식이다. 문은 여닫이와 미닫이라는
기본 방식과 문 전체를 위로 들어 올리는 방식이 있어 열림의 형태를 다양하게
만든다. 이러한 공간의 가변성이 한옥을 더욱 특별하게 하는 요소이다.

활내정

손님이 온다 잔치를 열자

가을 - 아침부터 까치가 울더니 반가운 손님이 오셨습니다. 오곡백과 풍성하고 단풍이 산세를 아름답게 물들이는 바야흐로 가을. 갓 추수한 햅쌀로 떡을 빚고 잘 익은 술을 곁들어 손님상에 올리니 계절의 풍요로움이 더없이 충만하게 다가옵니다. 사랑채 문을 열어 멀리 앞산을 바라보니 가을의 절경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풍요로운 이 계절에는 잔치가 제격입니다. 특히 일가 친척이 모두 모이는 가을 명절 추석이면 마당, 마루, 사랑채 할 것 없이 모든 곳이 손님을 맞이하는 공간이 됩니다. 온 집안에 맛있는 음식 냄새가 감돌고 끊이질 않지요. 커다란 두레반상에 둘러 앉아 음식을 나누며 사는 얘기를 하다보면 마음은 어느새 가을하늘처럼 맑아집니다.

가을

LANDSCAPE 03.정

한옥은 살림공간이자 가족들의 보금자리인 동시에 일가친척, 이웃간 정을 나누는
공간이다. 공간은 손님에게 개방되어 있으며 변화가 자유롭다. 일례로 마당은 손님을 맞는 거실이자 공동의 작업공간이며 결혼식장도 된다. 한옥에는 화려한 과시보다는 은근한 절제와 소박한 아름다움을 선호하는 한국인의 정서가 담겨 있어 인위적
기교와 장식의 겉치레를 최소화한다. 한옥에는 겉으로 드러내기 보다는 은근하게
전하는 한국인의 정(情)이 담겨있다. 나와 너로 분리된 개인보다는 공동체로서의
우리를 소중히 여기는 한국인의 정서가 배어있다. 공동체를 연결하는 뿌리를
확인하는 행사가 바로 제사인데 문중에서 공동으로 모시는 제사인 시제를 위한
공간이 재실이며, 한가족이 선조를 숭배하는 공간이 사당이다.

활내정

겨울은 봄을 품고 있다

겨울 - 온 세상이 하얗게 눈이 온 아침입니다. 화로에 홍시처럼 잘익은 숯불을 골라 담아 할머니 방에 옮겨드리니 할머니께서는 화로에 밤을 넣으시며 함께 먹자고 하십니다. 아직 코끝이 매운데도 할머니는 '겨울이 아름다운 것은 봄을 품고 있기 때문이란다' 라고 하시며 빙그레 미소를 지으십니다. 아랫목에 손을 대보니 온돌의 장작불 온기가 여전합니다. 할머니께서는 발은 아랫목에, 머리는 윗목에 두고 자면 몸에 좋다고 말씀하십니다. 발은 따뜻하게 하고 머리는 차게 하라는 말씀인데 이는 현대과학에서도 입증된 건강법이지요. 어느것 하나 자연재료로 만들어지지 않은 것이 없는 한옥은 자연의 순환질서를 따릅니다.겨울

LANDSCAPE 04.순환

한옥은 살아 숨쉬는 집이라고 할 수 있다. 숨을 쉰다는 것은 적절한 환기와 적절한 습기조절을 뜻한다. 집안의 공기가 돌아야 하고 집안의 습기가 많을 때 빨아들였다가
건조할 때 내뿜어줘야 한다. 한옥은 나무, 흙, 짚, 닥종이 등의 자연 재료로 지어 자연환경에 조화롭게 환기와 습기조절이 이루어진다. 또한 한옥을 구성하고 있는
자연재료들은 한옥의 수명이 다하게 되면 불에 태워지고 흙에 묻혔다가 세월 속에 분해되어 거름이 되어 자연으로 돌아간다. 쓰레기를 남기지 않고 자연으로 온전히
돌아가는 것이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자연인이 되게 해주는 공간, 바로 한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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