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하리라
한옥은 조화미가 빼어난 집이다. 자연과의 일체감을 중시하고 유교의 가르침에 따라 공동체를 소중히 여기는 한국인의 삶이 한옥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한옥은 바람과 물, 산의 흐름과 형세에 어우러지는 터에 지어진다. 위계를 구분하는 유교의 영향으로 공간이 나뉘는데 부부의 공간까지 구분되는 것이 특이하다.
안살림을 총괄하는 아내는 안채를, 손님을 응대하고 학문에 힘쓰는 남편은 사랑채를 담당한다. 남녀의 구별이 뚜렷했던 유교의 영향으로 두 공간은 적절한 차단형식이 가해진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모든 공간은 한데 어울리며 연결되어 있다. 안채는 옆방과 등을 맞대고 건넌방과 창을 맞추는 것이다. 한옥에서는 위계와 규범의 유교적
가치보다 조화의 가치를 우선했다.
열린 집에서 잠시 바람을 품노라
한옥은 열린 공간이다. 소통하며 순환하는 자연의 원리가 그 안에서 숨쉬고 있다. 한옥에서는 4개의 기둥이 만든 공간을 기본단위로 하는데 이것이 바로 ‘칸(間)’이다. 이 칸이 더해지거나 분화함으로써 공간에 다양한 변화를 만드는데 거기에는 나름의 질서가 있다. 공간은 맞대고 있거나 대청마루, 툇마루 등으로 연결되어 있다.
문을 닫으면 독립된 공간을 만들지만 문을 열면 공간은 한 순간 하나로 이어져
소통한다. 기본적으로 공간은 물 흐르듯 소통하고 있다. 이쪽 방문을 열고 나가면 대청마루가 있고 연이어 반대편 방이 있는 식이다. 문은 여닫이와 미닫이라는
기본 방식과 문 전체를 위로 들어 올리는 방식이 있어 열림의 형태를 다양하게
만든다. 이러한 공간의 가변성이 한옥을 더욱 특별하게 하는 요소이다.
손님이 온다 잔치를 열자
한옥은 살림공간이자 가족들의 보금자리인 동시에 일가친척, 이웃간 정을 나누는
공간이다. 공간은 손님에게 개방되어 있으며 변화가 자유롭다. 일례로 마당은 손님을 맞는 거실이자 공동의 작업공간이며 결혼식장도 된다. 한옥에는 화려한 과시보다는 은근한 절제와 소박한 아름다움을 선호하는 한국인의 정서가 담겨 있어 인위적
기교와 장식의 겉치레를 최소화한다. 한옥에는 겉으로 드러내기 보다는 은근하게
전하는 한국인의 정(情)이 담겨있다. 나와 너로 분리된 개인보다는 공동체로서의
우리를 소중히 여기는 한국인의 정서가 배어있다. 공동체를 연결하는 뿌리를
확인하는 행사가 바로 제사인데 문중에서 공동으로 모시는 제사인 시제를 위한
공간이 재실이며, 한가족이 선조를 숭배하는 공간이 사당이다.
겨울은 봄을 품고 있다
한옥은 살아 숨쉬는 집이라고 할 수 있다. 숨을 쉰다는 것은 적절한 환기와 적절한 습기조절을 뜻한다. 집안의 공기가 돌아야 하고 집안의 습기가 많을 때 빨아들였다가
건조할 때 내뿜어줘야 한다. 한옥은 나무, 흙, 짚, 닥종이 등의 자연 재료로 지어 자연환경에 조화롭게 환기와 습기조절이 이루어진다. 또한 한옥을 구성하고 있는
자연재료들은 한옥의 수명이 다하게 되면 불에 태워지고 흙에 묻혔다가 세월 속에 분해되어 거름이 되어 자연으로 돌아간다. 쓰레기를 남기지 않고 자연으로 온전히
돌아가는 것이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자연인이 되게 해주는 공간, 바로 한옥이다.